요즘 부산 해운대나 경남 진주와 함안 등 남쪽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도로변 소나무 숲에 비닐로 덮인 작은 무덤 같은 것들이 널려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재선충에 감염돼 죽은 소나무를 토막 내 쌓은 뒤 약을 부어 '훈증소독'하고 있는 것이다. 모양만 무덤이 아니라 실제로 소나무들의 공동 묘지인 셈이다.
'솔수염하늘소'가 매개하는 소나무재선충병은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병해충보다 소나무에 치명적이다. 길이 1㎜ 남짓한 이 재선충은 소나무 조직 속에서 급격히 증식해 수액의 통로를 막고 독소를 분비하는데, 일단 이 과정이 시작된 소나무는 구할 방법이 없다. 한때 전국을 휩쓴 솔잎혹파리에 의한 소나무 고사율이 3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소나무 에이즈'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시 동래구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뒤 10여년 동안은 그리 빠르게 번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1년을 고비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하더니, 2002년 산림청이 '긴급방제명령'을 내리고 재선충과의 총력전에 나선 뒤로도 전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산림청을 당황케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특히 경북 포항까지 북상한 것을 비롯해 모두 9개 시·군·구에 새로 번져, 피해 지역은 12월 현재 부산·울산시와 경남·전남·경북·제주도 등 6개 시·도, 37개 시·군·구에 이른다.
최근 몇년 사이 재선충병이 급속히 번지고 있는 원인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1999∼2000년에 항공방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기후온난화로 매개충의 서식환경이 좋아진데 따른 일종의 '환경재앙'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소나무를 놓고 벌인 재선충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왔다는 것이다. 산림청쪽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정차식 산림청 산림보호계장은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우리 숲의 30% 가량을 차지하며, 산을 사철 푸르게 만들어주는 소나무숲은 영영 사라져버릴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정영진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해충연구실장도 "지금처럼 2∼3년만 확산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2∼3년이 우리나라 소나무숲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고비"라며 "지금 상태로 라면 재선충에게 질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앞서 재선충의 공격을 받은 나라들의 현실에 대한 이들의 설명을 듣고 보면 재선충과의 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의 '약한 모습'이 이해가 된다. 정 실장은 "1905년 재선충병이 발생한 일본은 야산은 포기하고 황실림이나 신사 주변, 공원 등의 소나무숲만 방제약을 써 보호하고 있으며, 1985년부터 재선충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 대만은 일찌감치 백기를 들고 소나무숲을 차나무숲으로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재선충병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달부터 재선충 발생이 보고되지 않은 지역에서 재선충 피해목을 처음 신고하는 사람에게 50만원을 지급하는 신고보상금제 시행에 들어갔고, 재선충방제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내년부터는 항공방제를 늘리는 한편, 재선충 감염지역 가운데서도 최전방 지역에 있는 소나무는 감염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두 베어내 '무송지대'를 만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산림청의 후방에서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소나무재선충과 관련 있는 전국 각 대학의 임학, 곤충학, 농생물학 등 전공 교수들을 총동원해 새로운 전술과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제 방법도 국민들의 협조 없이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최대 이동거리가 3㎞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6월 재선충 발생이 확인된 경북 포항시 기계면 내단리는 가장 가까운 울산시 울주군의 재선충 감염지역에서 직선거리로 50㎞가 넘는다. 지난 9월말에는 바다 건너 제주도의 한 골프장 소나무숲에서 재선충 감염이 확인됐다. 인간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확산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 이상명 박사는 "재선충 피해지역에서 소나무를 조경용으로 파 가거나 죽은 소나무를 무단 반출하는 사람들이 매개충 이동을 돕고 있다"며 "이런 형태의 확산이 계속되면 언제 서울 남산 소나무에 재선충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도 "피해목을 베어 훈증소독을 할 때 나뭇가지 하나만 빼놓아도, 그곳에 솔수염하늘소 유충이 들어있다면 수십그루의 새 소나무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소나무숲을 지키기 위해서는 각 지역 지자체장과 관련 공무원, 현장 작업자를 포함한 온 국민의 의지와 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겨레신문/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