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희 문화연대집행위원장·중앙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최근 서울시청 앞 광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하이서울페스티발' 개막과 함께 `서울광장'으로 개장한 것이다.서울광장 조성으로 시청 앞 빈터는 새로운 공간적 기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그 동안 주로 교통만을 위해 사용되어 왔으나 앞으로는 축제, 음악회, 퍼레이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예정인 것이다.
자동차만 다니던 광장의 기능을 전환하여 문화행사가 가능한 곳으로 만든 것은 일단 긍정적이라 하겠다.지난 며칠 사이 이 곳을 찾은 시민들의 얼굴도 그래서 밝아 보였고, 광장 개장을 보도한 신문, 방송도 `서울 시민의 새로운 휴식처', `도심 녹색 휴식 문화공간'에 대한 예찬 일색이었다.
그러나 서울광장 개장을 무조건 환영할 것은 아녀 보인다.광장의 조성이나 운영을 둘러싸고 서울시가 수상한 의도와 태도를 드러낸 때문이다.우선 광장조성 과정도 문제였다.광장의 설계 공모를 해놓고 당선된 안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폐기 처분한 것이 단적인 예다.당선된 설계안에 어떤 흠집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공모로 정한 것을 공론절차도 없이 취소하고 서울시가 이 곳을 잔디광장으로 만든 것은 하이서울페스티발이 열릴 때 이 곳을 사용하자는 목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광장을 사용하는 방식을 놓고 서울시가 취하는 방침에 이르러 실망은 더 커진다.명색이 광장이라는데 앞으로 이 곳을 사용하려면 서울시로부터 사전에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광장은 최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해야 그 의미가 있을 텐데, 시가 시민의 광장 사용 용도를 규제하겠다니 쉽게 납득되지 않는 발상이다.
광장이 공공장소인 만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광장의 사용 여부를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게 할 수는 없다.서울시는 개장 뒤 처음 한 달 동안 이 곳 광장 사용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민주화기념사업회가 신청한 광장 사용은 거부하면서 행사 대부분을 시정 홍보를 위한 것으로 잡아놓았다고 한다.이런 조치는 광장 조성의 목적이 결국 서울시의 이미지행정을 위함이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하면서 앞으로 서울광장의 쓰임새를 예고한다.
시청 앞 광장은 한국 근대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1987년의 6월 항쟁, 2002년 월드컵 기간의 거리 응원 등 중대한 역사적 문화적 사건이 펼쳐진 공간이다.서울광장을 만든 것 자체도 이런 역사적, 상징적 중요성을 고려한 결과일 텐데, 서울시가 아무리 하이서울페스티벌 기간이라고 하지만 시정 홍보용 행사만 허용한 것은 지나쳐 보인다.
건물들이 밀집한 도시에서 광장은 개방 공간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곳보다 더 깊은 공공의 성격을 갖는다.문제는 이때 `공공'의 의미를 누가 결정하느냐는 것이다.서울시는 시정홍보도 공공의 성격이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시 행정만을 위할 바에야 시청 앞 광장을 조성할 필요가 없었다.광장이 공공성을 띠는 것은 시민들에게 제대로 개방될 때일 뿐이다.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광장은 통제공간이 되기 쉽다.나치 지도자 히틀러가 대중을 광장에 모아놓고 통제한 것이 단적인 예다.한국에서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여의도에 광장을 만들어 군대사열용으로 사용한 예가 있다.다행히 여의도 광장은 공원으로 꾸며져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이명박 시장이 이끄는 지금 서울시는 여의도 광장을 공원으로 바꿀 때의 서울시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서울광장이 이름에 걸맞은 기능과 모습을 가졌으면 한다.광장은 공개된 장소라는 물리적 성격에 맞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이는 민주화운동의 기념, 전위적인 문화적 실천, 정치적 입장 표명 등 서울시의 구미에 맞지 않는 행사도 서울광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