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리모델링' 이렇게-건축·문화계 제언::)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 도심 보행벨트 구축작업에 나서면서 600여년동안 수도기능을 해온 서울 4대문안 구도심의 재편작업이 가시화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바람직한 서울도심의 변화방향을 놓고 건축계와 문화계를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건축계와 문화계는 서울 구도심을 자연,역사,문화성이 어우러진시민의 활동공간으로 만들자는 방향아래 구상들을 잇달아 내놓고있다.단순한 보행벨트 구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녹지와 궁궐네트워크, 각종 문화시설이 어우러진 한국의 대표 이미지 공간으로 변모시키자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고도(孤島)로 전락한 4대문안〓4대문안 도심거리는 걷고자 하는 시민들을 철저히 배척하고 있다.한양대 등 4개 대학의 건축대학원 교수와 대학원생,문화연대 회원 등 50여명이 지난해말 실시한 서울시립역사박문관(경희궁터)~광화문~시청~남대문 걷기 퍼포먼스를 벌인 결과 내린 진단이다.

세종로 등 서울의 구도심은 철저히 차량에 점유된 채 녹지와 문화시설,역사적 건축물 등과 시민을 단절시키는 공간으로 전락했다.세종로를 건너기위해서는 광화문~세종로 네거리 구간 600여m를 지나 다시 기나긴 지하보도를 지나야한다.

그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이순신장군 동상은 멀고 먼 곳에서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신기루다.정부중앙청사와 미국대사관,문화관광부 건물은 사방에 둘러쳐진 돌담과 꽉 닫혀진 철문, 그위에 두른 철망으로 특징지어진다.이를 다시 가로막은 전투경찰과 전경버스는 시민의 발길을 원하지 않는 현재 세종로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류재홍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은 “시민들은 단지 거리낌없이 지나다니거나 잠시 편히 머물수 있는 공간을 바랄 뿐”이라며 “세종로에 있는 각종 시설과 건축물은 시민들이 맘편하게 접근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궁궐벨트 구축, 육조(六曹)거리 복원을〓젊은 건축사들의 모임인 새건축사협회는 최근 작성한 ‘세종로권역 문화적 리모델링방안 연구’를 통해 서울시의 광화문∼시청~숭례문 보행벨트 및광장 구축, 청계천 복원과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에 따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이전 등이 시민의 실질적인 활동성을 보장하는공간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세종로권역이 북악산~청와대~경복궁~광화문~시청 광장~남대문~남산으로 이어지는 보행축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인근 녹지벨트와궁궐벨트, 문화벨트와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궁궐벨트의 구축은 경복궁∼운현궁∼창덕궁∼창경궁∼종묘로 이어지는 서울 궁궐축의 복원을 뜻한다.특히 끊어졌던 종묘와 창경궁을 연결하는 작업과 운현궁, 경희궁 복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궁궐벨트는 가회동 북촌마을과연계시킬 경우 서울 도심 문화유산의 부피를 키워 서울 전체의이미지를 질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문화벨트인 북촌∼사간동∼안국동∼대학로(문화공간축)와인사동∼종로(상징거리축), 청계천(근대산업축) 등은 인근 궁궐벨트와 연계됨으로써 시민의 활동성에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할수 있다.

새건축사협회의 연구엔 청와대 일대를 정치성과 자연성이 결합된시민공원으로 만들자는 발상도 담겨있다.광화문을 현재 위치보다 전면배치해 복원하는 동시에 조선시대 육조(六曹)를 되살려세종로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신행정수도 이전이후 정부종합청사, 문화관광부 건물 등 근대 문화유산 가치가있는 건물들은 매각대신 외형을 남기는 수준에서 리모델링해 시민에게 개방해야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실패에서 배우자〓건축계 인사들은 구도심내기존 광장과 서울시가 추진중인 광장들을 유기적인 연결 시스템으로 재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또 녹지가 제대로 조성된데다 역사적 건축물이 잘 보존된 인왕산~경희궁~정동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덕수궁 블록’도 시민들이 마음놓고 보행할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현 한양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북악산과 남산을 잇는 서울의남북 자연축은 종로및 청계천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업, 시민문화의 동서축과 만나 비로소 걷고 싶은 서울도심으로 새롭게 변모할수 있다”고 말했다.

건축계 인사들은 무엇보다 서울시와 정부당국이 추진중인 구도심재편작업이 재원문제나 단기적인 개발이익 회수 등 경제논리에빠져 어쩡쩡한 상태로 귀결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서울 도심의 문화역사 중심으로의 재편은 30~40년을 내다보고 결정해야할 국가대계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40조원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 행정수도 이전비용마련을 위해 정부중앙청사 등을 개인기업에 매각하거나 정보산업, 금융 등의 중심지로 구성하려는 방안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70년대 강남개발 당시 도심 학교를 강남으로이전하면서 부지를 개인기업에 판 결과, 도심 공동화와 과밀화가함께 진행된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안우성 온고당 건축사무소 대표는 “중국 베이징의 경우 옛 건축물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식현대화 계획을 시행해 도시 고유의 풍경을 잃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 남아있는 우리의 전통 가옥이나 청계천 주변건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만큼 함부로철거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며 “로마 등의 예에서 보듯이 옛 건축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리뉴얼하는 경우 전문집단은 물론 시민들과 협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동근기자 olive@munhwa.co.kr



문화일보 02/23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