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명체는 나무이다. 세계 최고령 나무는 미국에 있는 브리슬콘 소나무로 거의 반만년의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 이미 나무는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숲은 인류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었고 마음속 고향으로 항상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나무'로 특유의 생장력, 번식력, 기후적응력으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솔밭 명소가 산재해 있다. '백사송림'으로 유명했던 포항 송도도 그 중 하나로, 여름밤 바닷가 솔밭에서 음악과 과학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유형의 음악회가 열린다.
사실 소나무는 예로부터 쓰임새가 많은 나무이다. 솔잎, 솔방울, 송순, 송화는 술, 떡, 약 등 식용으로 다양하게 쓰였고, '금강송'은 집과 절의 건축에 있어 최고의 자재로 여겨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솔가지, 송진 등 소나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땔감으로 활용되었고, 장례용 관을 짜는 데에도 두루 쓰였다. 소나무가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다수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선정된 것이나 애국가 2절에 포함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솔밭에 들어서면 상쾌하고 강렬한 송진 향이 온몸을 감싼다. 이 방향물질은 '피톤치드'와 '테르펜'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살균작용 등 소나무가 병원균으로부터 자기 방어를 하게 해준다. 소나무의 강력한 피톤치드의 항균작용, 테르펜의 인체흡수를 통한 진정, 스트레스 해소 등 다양한 약리 효과 때문에 삼림욕은 솔밭이 최고라고 한다.
한편 추석에 송편을 만들 때 솔잎을 넣는 이유가 소나무의 피톤치드를 이용한 살균과 장기보관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 '숲속의 보약' 피톤치드와 테르펜에 대한 연구는 초기단계이지만 최근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응용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소나무의 송진은 흥미롭게도 생명공학의 핵심 화두와 연결된다. 송진이 흘러내려 땅속에 묻혀 화석이 된 것을 호박이라고 한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공룡의 피를 빨고 난 후 송진에 갇혀 호박화된 모기로부터 공룡의 DNA를 추출하여 공룡 복제에 성공한다. 이는 당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화석으로부터의 생명체 복제의 실제 가능성과 윤리성에 대한 뜨거운 논쟁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해안의 솔밭은 사람들의 휴식처뿐 아니라 방풍림으로서 태풍과 쓰나미와 같은 무서운 자연재해로부터 인명과 가옥을 지켜준다. 지난해 12월 말 동남아에서 쓰나미에 의해 23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벌채가 금지되었던 한 바닷가의 맹글로브 나무숲이 인근 호텔을 안전하게 지켜 주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근대 이후 쓰나미에 대비하여 해안가에 자연 방풍림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오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적으로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해안방풍림이 지난 20년간 30% 정도 감소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국내외 최고령 나무의 장수 비결은 역설적으로 매우 열악한 생존환경에서의 적응이었다. 소나무도 특유의 생명력으로 '가장 한국적인 나무'로 자리매김하여 생명과 장생, 기개와 절조의 상징이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솔밭은 최대의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국내에서 '소나무 에이즈' 재선충과의 치열한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또한 전 지구적 온난화도 침엽수인 소나무 생태계에 장기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민간요법에 따라 소나무에 막걸리를 주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도 나오지만 더욱 다양하게 소나무를 구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포항 송도 솔밭에서의 '과학과 함께 하는 솔밭음악회' 행사가 사라져 가는 솔밭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세계일보/김승환 포항공대 교수·물리학 >